[호국 보훈의 달 특집] ③6·25전쟁 전적지를 가다
철원=박새롬 기자 rome@chosun.com 입력 : 2021.06.21 03:00

"祖國<조국> 지킨 참전 용사의 희생 가슴 깊이 새기고 돌아갑니다"

	지난 10일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와 철원 평야를 바라보며 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는 명예기자들. 왼쪽부터 채서은·전시우·정윤현 양.<br>※QR코드를 스캔하면 본지 유튜브 채널에서 현지 취재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와 철원 평야를 바라보며 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는 명예기자들. 왼쪽부터 채서은·전시우·정윤현 양.
※QR코드를 스캔하면 본지 유튜브 채널에서 현지 취재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강원도 철원 해발 395m의 한 고지(高地·지대가 높은 땅).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중국 공산당 군)은 이곳에 포탄을 2000발 투하한다. 우리 국군도 이에 맞서며, 단 1㎝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피의 사투(死鬪)가 시작된다. 열흘간 고지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시시각각 접전이 이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격과 거대한 포격, 각종 총탄이 난무해 민둥산이 되어버린 형상이 마치 흰 말이 누운 것 같아 '백마고지(白馬高地)'란 이름이 붙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지난 10일 어린이조선일보 명예기자 전시우(서울 목동초 4) ·정윤현(서울 신도초 5)·채서은(서울 잠원초 5) 양과 함께 북녘과 맞닿아있는 강원도 철원 일대를 둘러봤다.
	백마고지를 알리는 표석. /철원=김성태 작가
백마고지를 알리는 표석. /철원=김성태 작가
"백마고지 지키는 군인 될래요"

서울 도심에서 출발한 지 2시간 정도 지나자 마침내 '백마고지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오래된 표석이 취재진을 반겼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목숨 바친 호국영령을 기기 위해 만들어진 '백마고지 전적지 기념공원'에 도착했다. 자작나무와 함께 길가에 늘어선 태극기를 따라 언덕을 올랐다. 전시우 양은 "우리 민족의 희생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고 했다. 이주섭 해설사가 "흰 껍질의 자작나무는 백마고지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유골(遺骨)을 상징하기 위해 심은 것"이라고 설명하자, 일행들의 분위기가 숙연했다.

언덕 위에 다다르자 전승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양 주먹을 힘주어 쥔 형태엔 '다신 고지전과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와 간절한 소망이 담겼다. 얼굴 없는 사람이 춤추는 모양의 청동 조각도 새겨져 있다. 조국(祖國) 수호의 임무를 완수하고 승천하는 참전 용사의 영혼을 의미한다. 채서은 양은 "이곳을 지키려 수많은 군인이 희생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기념탑 오른편엔 깃대 높이 50m의 거대한 태극기가 무겁게 펄럭였다. 이주섭씨는 "바로 이곳이 자유 대한의 땅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태극기"라고 했다.

'DMZ 평화의 길' 입구로 이동하자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 가운데 백마고지가 보였다. 무참한 혈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네 야산처럼 생긴 작은 언덕이었다. 태극기와 UN기가 꽂힌 GP(경계초소)를 본 정윤현 양은 "새로운 꿈이 생겼다"며 입을 뗐다. "우릴 위해 저기서 목숨을 잃은 분들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저도 저곳을 지키는 군인이 되고 싶어요."
	①백마고지 전적지 기념공원의 전승 기념탑과 태극기. ②전쟁 당시 멈춘 군용 열차가 있는 월정리역. ③취재하며 친해진 전시우·채서은·정윤현 명예기자들.
①백마고지 전적지 기념공원의 전승 기념탑과 태극기. ②전쟁 당시 멈춘 군용 열차가 있는 월정리역. ③취재하며 친해진 전시우·채서은·정윤현 명예기자들.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

오후 2시경,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진입 직전. 차량번호와 인적사항을 등록하고 경광등을 차 위에 붙여 출발했다. 적막한 도로 위를 달려 '철원평화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선 비무장지대(DMZ)를 비롯해 북측 평강고원과 선전 마을 풍경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군(軍) GP가 보이는 곳에서 고개를 잠시 돌리자 붉은 인공기(人共旗)가 꽂힌 북한군 초소가 보였다. 물리적 간격은 가까웠지만, 수십 년 넘게 좁혀지지 않은 거리감이 둘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차로 10분 정도 지나 월정리역에 도착했다. 과거 서울에서 함경남도 원산으로 가던 경원선 열차가 지나던 기차역이었다. 이곳엔 전쟁 때 폭격을 맞은 군용 열차가 멈춰 있다. 열차는 전쟁 직후 처참했던 민족의 삶처럼 앙상한 잔해만 남긴 채 주저앉아 있었다. 망가지고 녹슨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고철(古鐵)은 그 자체로 6·25 참상을 보여줬다. 그 옆을 우두커니 지키고 선 표지판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취재는 오후 4시에 끝났다. 한탄강을 따라 철원을 빠져나가는 길, 수많은 태극기가 펄럭이며 뒤로 사라졌다. 선선한 바람, 낮게 나는 새, 서걱서걱 풀소리…. 이 순간의 평화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픈 역사가 서린 철원 땅을 지나 일상으로 되돌아오자 명예기자들의 눈빛이 처음과는 달라졌다.

"사실 6·25전쟁에 대해서도, 왜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예전엔 잘 몰랐어요. 하지만 이젠 알아요.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지나온 역사를 잘 알고 배워야 해요. 6·25 참전 용사님들,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채서은)
 [호국 보훈의 달 특집] ③6·25전쟁 전적지를 가다
反인권 공산당의 실체 '노동당사'

민통선 길목에 있는 노동당사(黨舍)도 들렀다.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공산주의 체제를 선전하고 독재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노동당 철원 당사다. 모습이 잘 보존된 앞쪽과 달리, 건물 뒤편은 허물어져 철근이 드러난데다 군데군데 검게 그을린 총탄 자국이 있었다. 전쟁 당시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흔적이다. 해설을 맡은 김선희씨는 “양민 수탈과 고문, 학살 등으로 악명 높았던 장소”라며 “공산 정권이 선량한 주민들의 피땀을 착취해 당사를 짓고, 일대를 관장했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잡혀와 처참히 죽어나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