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 전문가에게 듣는 위조지폐 이야기] "기계도 못 잡는 가짜 돈 '위벤저스<위폐 전문가와 어벤저스를 합친 말>'가 잡아냅니다"
박새롬 기자 rome@chosun.com 입력 : 2021.07.30 03:00
	/아이클릭아트·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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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세계에서 유통되는 위조지폐는 6억~7억 달러(약 7000억~8000억 원)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발견된 원화(우리나라 화폐) 위조지폐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위폐 청정국'이 되기까지는 '위폐 감별사'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한국은행, 국가정보원, 각 은행에서 모인 위폐 전문가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유튜브 채널 '위벤저스'(위폐 전문가와 마블 영화 속 지구를 지키는 영웅들 '어벤저스'를 합친 말)를 개설해 위폐 감별·피해 예방에 몰두하고 있다. 위벤저스로 활동하는 배원준(55) 신한은행 외환업무지원부 팀장, 이승엽(38) 한국은행 발권정책팀 과장을 전화로 만났다. 배 팀장은 "정교한 위폐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잘 모를 수 있다"며 "우리는 어떤 점이 조작된 것인지 정확히 알아내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끈기와 꼼꼼함은 필수

Q. 위조지폐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감별하나요.

"시중에서 돌아다니던 지폐가 은행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은행 창구에서 지폐 계수기를 이용해 위폐로 의심되는 지폐를 1차로 걸러내요. 그다음 어떤 부분이 위조됐는지, 위조지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중 은행 본점과 한국은행으로 전달해요. 이곳에서 적외선·자외선·자력 감지 기계 등 정밀 검사기계로 각종 위·변조 방지 장치를 확인하죠. 기계에서 인식이 안 된 지폐는 사람이 직접 살펴봅니다. 결국 위폐를 최종적으로 감별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죠." (이승엽)

Q. 직업으로서 '위조지폐 전문가'는 어떤가요?

"돈 먼지를 뒤집어쓰니까 늘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일하는, 불편한 점이 많은 직업이죠. 또 아무리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도 평생 돈을 직접 만지면서 연구해야 하고요. 그래서 늘 새롭고 재미도 있지요. 위폐로 보이기는 하는데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할 때, 며칠씩 돈만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해요. 끈기와 꼼꼼함이 필수죠."(배원준)

Q. 범인들은 어떻게 '가짜 돈'을 만드나요.

"2004년부터 9년간 5000원권 약 5만 장이 유통된 적이 있어요. 이 사건의 범인은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한 자였는데, 포토샵과 프린터로 숨은 위조 방지 장치까지 정교하게 모방했죠. 하지만 전문가의 눈을 피해갈 순 없었죠. 위조지폐범과 저희의 싸움은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 같아요. 위조 방지 기술을 강화하면 또 다른 교묘한 위폐가 생겨나죠. 자세히 알려드리면 모방 범죄 유혹에 빠질 수 있어서 여기까지만 할게요(웃음)." (이승엽)


위폐 감별은 국가 位相과 직결

Q. 기억에 남는 사건은요?

"두 달 전쯤 은행 한 지점에서 위폐가 의심된다며 제게 보내온 지폐가 있었어요. 발행연도가 1977년인 미국 100달러 지폐 여러 장이었는데, 위조 수준이 정교해 '슈퍼노트*'로 의심됐죠. 미국 달러는 12주(州)에서 발행해 주마다 지폐에 조금씩 다른 점이 있어요. 이를 비교·대조하려면 같은 해에 발행된 지폐 여러 장이 필요했죠. 일주일을 기다려 홍콩에서 달러화를 들여왔고, 하나하나 분석한 결과 정교하게 조작된 위폐라는 걸 확인했어요. 문제의 위폐들은 옛(1989년) 슈퍼노트인지, 새롭게 만들어진 위폐인지 알아내기 위해 현재 미국 중앙은행 측에 보냈답니다." (배원준)

Q. 요즘은 지폐를 잘 안 써서 위폐 문제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고 1000원짜리 지폐를 냈다고 해봅시다. 만약 그게 위폐라면, 상점 주인이 손해를 입겠죠? 일상에서 위폐가 많이 유통되면 돈을 주고받을 때마다 의심해야 되니 아주 불편해질 거예요. 위폐 감별은 국가 위상(位相)과 직결돼요. 위폐가 돌아다닌다는 건 그만큼 보안이 허술하고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걸 의미하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위폐 범죄를 많이 당한다면 국가 신뢰도도 그만큼 떨어지겠죠? 위폐를 철저히 감별해내야 하는 이유랍니다. 저희는 가짜 돈을 찾아내고, 그런 돈이 유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을 열심히, 계속해서 할게요. 돈, 열심히 들여다보겠습니다!"(배원준)

*슈퍼노트(Super Note): 진짜 화폐와 구별하기 매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미국 100달러권 위조지폐. 1989년 필리핀 마닐라의 은행에서 처음 발견됨.

 [위폐 전문가에게 듣는 위조지폐 이야기] "기계도 못 잡는 가짜 돈 '위벤저스<위폐 전문가와 어벤저스를 합친 말>'가 잡아냅니다"
원화 위조지폐 식별법

비춰보기 5000원, 1만 원, 5만 원권을 빛에 비춰보면 각각 왼쪽 여백에 숨겨진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초상이 보인다. 5만 원권엔 숫자 ‘5’가 써진 오각형 그림도 확인할 수 있다.

기울여보기 지폐를 기울여 보면 각도에 따라 세 가지 무늬가 번갈아 보인다. 태극무늬, 독도까지 표기된 우리나라 지도, 건곤감리 무늬다.

만져보기 초상과 문자 등이 볼록 인쇄돼 만지면 오돌토돌한 감촉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