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동시(童詩)를 찾게 된단다. 한평생 어른을 위한 시를 쓰다, 흰머리 지긋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동시로 돌아온다고. 잃어버린 동심(童心)은 그렇게 회복된다고 말이다.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을 맞는 정호승(71) 시인이 첫 번째 동시집 '참새'로 독자 곁을 찾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시집에 적힌 '모든 어린이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었다'라는 문구가 참 와닿습니다.

"늘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빠짐없이 노트에 받아 적으라고. 그것만 잘 묶어서 써도 근사한 시집이 된다고요. 어린이의 언어는 반짝반짝 살아 숨 쉽니다. 그 속엔 세상의 때가 묻은 어른들은 절대 따라 하지 못할 순수함이 배어 있죠. 어린이를 가만 지켜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감탄한 적이 참 많아요."

그런 순간을 시에 오롯이 담으셨다고요.

"한번은 지인이 자기 아들내미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생선 가게에 갔는데 애가 생선 장수에게 얼굴이 예쁜 고등어를 달라고 했다지 뭐예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어요. '그래, 고등어도 얼굴이 있지. 어린이는 한낱 찬거리에서도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구나!' 하고요. '고등어 얼굴'이란 시가 그렇게 나왔어요. 맑은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라면 늘 동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 큰 어른이 동심을 갖긴 쉽지 않겠는데요.

"늘 자연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은 느릿느릿 지나가는 달팽이, 콘크리트 틈새에 난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왜 달팽이는 등에 무거운 집을 이고 다닐까?' '저 풀은 딱딱한 바닥에서 숨 쉬기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자연의 마음이 돼서 생각하지요. 그게 바로 동심이에요."

이번 시집에 달팽이, 참새, 나무 등 자연을 주제로 한 동시가 유독 많은 이유군요.

"자연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마음 가는 대상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내겐 단단한 등껍질 속에 연약한 살을 품은 달팽이가 그런 존재죠. 우리나라에서 달팽이 관련 시는 내가 제일 많이 썼을 거예요. 나는 평소에도 절대 달팽이 안 밟습니다. 길에서 만나면 피해가지요. 한번은 다른 사람이 달팽이를 밟을까 봐 살짝 들어서 풀숲에 옮겨주려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 실수로 등껍질을 떼버렸죠. '아, 달팽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떡하니' 시를 쓰면서도 참 속상하더라고."

어릴 땐 어떤 학생이었나요?

"동네에서 눈사람 제일 많이 만들던 아이였지요. 겨울이면 친구들과 온종일 눈썰매 타고 눈싸움하고, 여름이면 냇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죠. 그땐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주 소중한 경험이더군요. 어릴 때 순수했던 모습을 잊지 않으면서 오래도록 동시를 쓰고 싶어요."

어린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요.

"요즘 아이들은 어른만큼이나 바쁘게 살죠. 그래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 정도는 가졌으면 해요. 누구에게나 관심 가는 것,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은 있으니까요. 나도 어릴 때 누가 강요해서 시를 쓴 게 아니거든요. 그냥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벌써 50년 가까이 시인으로 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