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차고 통통튀는 인터뷰] '손글씨 인플루언서' 유한빈 작가
이슬기 기자 seulee@chosun.com 입력 : 2021.10.21 03:00

손글씨에 마음 '꾹꾹' 필사 노트 한 권 만들어보세요

 [알차고 통통튀는 인터뷰] '손글씨 인플루언서' 유한빈 작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등장한 펜 한 자루가 흰 종이 위에 윤동주의 명시(名詩) '서시'를 써낸다. 별다른 이야기나 화려한 효과도 없이 '사각사각' 글을 적는 소리만 가득하지만, 이 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270만 회. 오로지 손으로 글씨 쓰는 모습을 보려고 찾아온 시청자들은 '이런 글씨로 쓴 편지를 받으면 황홀할 것 같다' '한글의 위대함을 '손글씨'로 예술화한 것 같다' 등 소감을 남겼다.

영상의 주인공은 유튜브 채널 'ASMR 펜크래프트'의 유한빈(28) 작가. '나도 손글씨 바르게 쓰면 소원이 없겠네'를 출간한 유 작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손글씨 인플루언서'다. 악필(惡筆)이 콤플렉스인 이들을 위해 바르게 글씨 쓰기 강의도 진행한다. 그가 이토록 정성스레 글씨를 적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5일 유 작가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동백문구점에서 만나 물었다.


삐뚤빼뚤 글씨에서 나만의 멋진 글씨체 갖기까지

필체(筆體)가 참 멋져요.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썼나요?

"오히려 삐뚤빼뚤한 글씨체 때문에 늘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던 어린이였어요. 그때는 왜 글씨를 잘 써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손글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약 10년 전이에요. 군대에서 동료가 뭔가를 적는데, 글자가 정돈되고 보기 좋으니 동료 모습도 평소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괜히 더 멋진 것 같고(웃음). 그때 '나도 저렇게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작정 서점에 가서 관련 책을 40권은 샀지요."


손글씨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요.

"글씨 연습하던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처음에는 연습 과정을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갈수록 방문자와 '좋아요'가 느는 걸 보고 생각보다 손글씨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했지요.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글을 적을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곧 유튜브에 ASMR* 채널을 열었지요. 많은 분이 댓글이나 메시지로 '컴퓨터로 찍어낸 글자 같다' '완벽한 필체가 부럽다'고들 하시지만, 저는 아직도 제 글씨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손글씨 쓰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정성이 들어가잖아요. 간단한 메모 하나를 전달하더라도 손글씨라면 조금 더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기가 쉽죠. 가게마다 키오스크가 들어서고 무슨 일이든지 비(非)대면,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등 사람과 사람 사이 접촉이 줄어드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손글씨처럼 조금은 불편하면서도 사람의 손때가 묻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해요."
 유한빈 작가는 “필사는 ‘손글씨’를 더 잘 쓰게 할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도 도움 된다”며 “최근에는 매일 소설 ‘돈키호테’와 성경을 한두 시간씩 옮겨 적고 있다”고 했다. /양수열 기자
유한빈 작가는 “필사는 ‘손글씨’를 더 잘 쓰게 할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도 도움 된다”며 “최근에는 매일 소설 ‘돈키호테’와 성경을 한두 시간씩 옮겨 적고 있다”고 했다. /양수열 기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손글씨

글씨를 더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른에겐 하루 30분씩 필사(筆寫) 하기를 추천해요. 보기 좋은 글씨와 잘 쓰인 문장을 3~4주간 꾸준히 따라 적다 보면 누구나 바른 필체로 거듭날 수 있죠. 어린이라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큼만 필사해 봐요. 부모님에게 특별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아이에게 '글자 예쁘게 써라' '글쓰기 연습해라' 잔소리하기보다는 먼저 정성 들여 글씨 쓰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또 필사하다 보면 책 읽기에 흥미가 없는 어린이도 자신도 모르는 새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드는 효과도 있지요."


스마트 기기 등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글씨 쓰기 자체를 어려워하는 어린이가 늘고 있어요.

"손글씨를 못 쓴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선 안돼요. 글쓰기가 더 싫어질 테니까요. 글씨 쓰기엔 정답이 없어요. 잘 쓰고 싶다면 보기 좋은 글씨체를 따라 쓰면 돼요. 손으로 편지를 적어 소중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도 좋아요. 편지를 쓸 땐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고 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을 떠올리면서 내 마음을 적다 보면 자연스레 예쁜 글씨가 된답니다."

*ASMR: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 주로 바람이 부는 소리나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등 청각 매체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이나 쾌감을 주는 영상 콘텐츠를 일컫는다.

→ 글씨를 쓰는 소리를 직접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촬영해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