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 박과(科)의 덩굴성 식물로 인도가 원산지다. 열매는 둥글고 지름은 10~20㎝ 안팎이다. 처음엔 초록빛이나 완전히 익으면 하얗게 변한다. 잎은 심장 모양이고, 꽃잎은 다섯 갈래로 갈라진다. 오이·멜론·호박·수박·수세미·참외·여주 같은 박과 식물 꽃은 죄다 노랗지만, 박꽃은 유난히 희다. 지붕에 오른 박은 길게 사방으로 넝쿨을 뻗는다. 충매화(蟲媒花·곤충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되는 꽃)인 박꽃을 꽃가루받이해주는 곤충 박각시는 빠른 날갯짓으로 정지비행을 한 채 몸보다 긴 빨대를 꽂아 꽃물을 빤다.

묽은 첫서리가 내릴 즈음 지붕의 박을 따서 슬근슬근 톱질로 반을 켜고 속을 파낸다. 이를 솥에서 끓여 다시 깨끗이 다듬고 말린 것이 표주박이다. 뒤웅박은 제대로 익지 않은 늦가을의 박을 꼭지 부근에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도려내 속을 파내고 말린 것이다. 또한 위와 아래가 둥글면서 가운데가 잘록한 박은 '호리병박' 또는 '조롱박'이라 한다.

바가지는 용도가 다양하다. 쌀독에서 쌀을 푸는 쌀 바가지, 장독에서 장을 푸는 장조랑 바가지(조롱박), 물독에서 물을 푸는 물바가지 등이 있다. 우물물을 퍼 올리는 데 쓰는 것은 두레박이다. 생활 필수품으로 우리와 아주 가까웠던 표주박은 이제 플라스틱 바가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굿판에서는 바가지를 통째로 짓밟아 깨뜨려 액운을 쫓았다. 신부 어머니가 함을 받을 때에 방문 앞에 준비해놓은 바가지를 밟아 깨뜨리는데, 이는 함진아비(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보내는 함을 지고 가는 사람)를 뒤따라온 귀신을 놀라게 해 쫓아내는 의식이다. 신라 시조 혁거세는 박만큼이나 큰 알에서 태어났다 해 박씨 성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 자연과 인문을 버무린 과학비빔밥 3: 식물 편
권오길 글｜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