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葛]과 등나무[藤]는 동아줄 같은 줄기를 한 방향으로만 휘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넝쿨이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 방향에 따라 '왼쪽감기'와 '오른쪽감기'로 나뉜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반시계 방향으로 감으며 오르는 왼쪽감기를 하는 게 칡의 대표적 모습이고, 등나무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 시계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형태가 많다. 그런데 칡과 등나무를 한 자리에 심어두면 오른쪽감기에 뛰어난 등나무와 왼쪽감기로 이름난 칡이 서로 엇갈리게 되고 이리저리 꼬인다. 쉽게 풀 수 없는 상태를 만드니 '갈등(葛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가 합쳐진 말이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밀고 당기는 다툼을 이 두 식물에서 볼 수 있다.

칡은 콩과(科)의 다년생 나무식물로 줄기는 매년 굵고 길어진다. 이웃 나무를 칭칭 감고 바위에 기대어 20m 넘게 뻗는다.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가 원산지로 우리나라 전역 산기슭에서 자란다. 칡은 오래전부터 죽·묵·국수 따위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찧은 칡뿌리를 물에 담근 뒤 가라앉은 앙금을 말린 가루를 '갈분(칡녹말)'이라 하는데, 갈분에 멥쌀가루를 넣고 쑨 죽이 갈분죽이고, 설탕을 넣어 끓인 물이 갈탕이다. 뿌리를 짜서 칡즙을 내거나, 삶아서 칡차로도 마셨다.

등나무는 칡과 마찬가지인 콩과의 낙엽성 덩굴 식물이다. 10m에 달하는 줄기는 칡과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오른다. 잎은 마주나기(식물의 줄기에 잎이 붙는 형식)하고, 잎자루에 13~19개(홀수)의 타원형 소엽이 달리며, 길이는 4~8㎝이다. 등나무꽃은 5월경에 연한 자주색으로 피고, 열매는 9월에 익는다. 여름 뙤약볕을 가려주는 그늘 역할을 하며 줄기를 활용해 지팡이나 등의자를 만들 수도 있다.

● 자연과 인문을 버무린 과학비빔밥 3: 식물 편
권오길 글｜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