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의 매력에 반해 전 세계 돌며 수집

"40여 년간 필통을 모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30국을 돌며 수집했지요."

모우재 박물관을 설립한 정범진(87) 관장님의 말씀이에요. 성균관대학교 제16대(代) 총장을 지낸 그는 "여기 있는 필통 모두가 내 자식 같다"며 필통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어요.

박물관 이름인 '모우재(慕愚齋)'는 정 관장님의 10대(代) 조상 '우담(愚潭) 정시한' 선생을 숭모(崇慕)한다는 의미라고 해요. 숭모에서 '모(慕)' 자를 따고, 정시한 선생의 호(號)인 우담에서 '우(愚)' 자를 따 지은 거죠.

필통 박물관을 이곳에 세운 이유를 여쭸어요. 정 관장님은 "이곳이 내 고향"이라며 "박물관 옆에 내가 태어난 본가(本家)가 위치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정 관장님이 필통을 모으게 된 계기는 뭘까요.

"평생 책상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왔잖아요. 그런데 어느날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펜들을 보고 깨끗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필통이 떠오른 거예요. 이후 '정리 정돈의 아이콘' 필통에 매력을 느껴 자연스럽게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정 관장님은 국제학술회의 참석 등 다양한 이유로 해외를 방문할 때마다 필통을 하나씩 사 모았죠. 지금은 이 필통들이 그의 소중한 '보물'이 됐답니다.

잃어버렸던 필통 되찾아… 저마다 사연 있네

수집한 필통에는 다양한 일화(逸話)가 담겨 있는데요. 도둑맞은 필통을 다시 산 경우도 있대요. 정 관장님이 필통 수집에 열을 올리던 즈음,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들은 집 안에 있는 서화 여러 점과 필통 몇 개를 훔쳐 달아났죠. 정 관장님은 슬펐지만 '도둑맞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필통 가게를 들렀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잃어버린 필통을 발견한 거예요. 가게 주인에게 "얼마냐"고 물었더니 "6만 원"이라고 했대요. 결국 정 관장님은 그 가격에 필통을 다시 샀죠. 처음에 4만 원에 샀던 필통을 6만 원에 재(再)구입한 '웃픈' 얘기랍니다.

정 관장님은 전시돼 있는 모든 필통을 숫자로 매겨 구매한 날짜, 장소, 재료, 모양 등을 일일이 기록해뒀어요. 그는 "필통은 각종 문구를 한곳에 모아 쉬도록 했다가 나중에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문방사우(붓·먹·종이·벼루)보다 필통이 더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했어요. 필통을 통해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오신 겁니다.

→ 여러분이 가장 아끼는 ‘필통’을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