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파리매

들풀이 무성한 들판에 ‘작은 송골매’로 불리는 ‘왕파리매’가 나타났다. 부리부리한 두 눈, 예리한 포획용 다리,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비행 능력까지 갖춘 모습이 꼭 송골매를 닮았다.

사뿐히 풀잎 위에 앉은 왕파리매가 초록 빛깔의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눈을 고정시켰다. 왕파리매의 겹눈은 잠자리처럼 매우 크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먹잇감도 잘 포착할 정도로 시력이 좋다. 비행능력도 뛰어나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먹잇감도 순식간에 낚아채 간다. 탁월한 사냥 본능을 가진 왕파리매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포르르 날아올라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쉬익~’ 넓은 들판에 나타난 왕파리매 때문에 곤충세상은 술렁거린다. 불룩 튀어나온 왕파리매의 두 눈은 ‘먹이 탐지기’다. 벌써 왕파리매의 레이더에 풍뎅이 한 마리가 포착됐다. 소리도 없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하늘을 날고 있는 등얼룩풍뎅이를 덥석 잡았다. 버둥버둥, 뜻밖의 공격에 놀란 등얼룩풍뎅이가 죽을 힘을 다해 벗어나려 하지만, 두툼한 왕파리매의 다리에 속수무책이다. 버둥거릴수록 왕파리매의 기다랗고 두툼한 다리가 올가미처럼 계속 조여들 뿐이다.

왕파리매에게 제대로 걸려들면 빠져나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냥감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먹잇감이 되고 만다. 슬쩍 날아오른 왕파리매의 사냥솜씨는 송골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왕파리매를 ‘강도파리(robber fly)’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사냥 킬러의 본능을 가진 왕파리매는 파리와 풍뎅이, 꽃등에, 꿀벌과 같은 소형 곤충들을 사냥하는 건 기본이다. 힘이 센 말벌이나 매미는 물론이고, 곤충계의 최대 포식자 사마귀와도 대등하게 맞선다. 왕파리매의 선제공격에 걸려들면 악명 높은 사마귀도 무릎을 꿇고 만다.

사냥한 먹이를 꽉 붙들고 뾰족한 구기(입)를 사냥감에게 꽂는다.

‘쪽~쪽~’ 사냥한 곤충의 체액을 빨기 시작한다. 사냥감은 점점 더 힘을 잃는다. 왕파리매는 사냥한 곤충을 갖고 날아다니며 먹는다. 그래서 사냥 곤충을 안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결국 왕파리매에게 체액을 모두 잃은 곤충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껍질만 남는다. 종종 아무 상처 없이 죽은 곤충들을 볼 때마다 ‘사냥천재’ 왕파리매가 떠오른다.

그런 왕파리매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다. 힘세고 커다란 장수말벌, 곤충 최대의 천적 거미, 당랑권을 쓰는 사마귀, 독을 가진 지네, 개구리나 도마뱀과 같은 소동물들이 부리부리한 왕파리매의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꼬리를 내밀고 슬쩍 도망간다. 그러나 왕파리매는 사냥천재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왕파리매

파리류에 속하며 몸길이는 20~28mm. 곤충 중에서는 큰 편이다. 날개는 연한 황갈색이고, 다리는 흑색, 종아리마디는 황색이다. 7~8월에 성충으로 출현해 농작물에 해를 주는 곤충들을 주로 잡아먹는다. 짝짓기를 위해 수컷은 암컷에게 먹잇감을 선물하는데, 암컷이 먹이를 먹는 틈을 노려 수컷은 짝짓기를 시도한다. 전 세계 7000여 종 이상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20여 종이 살고 있다.

▶파리목(류)의 여러 곤충들

곤충들은 대부분 날개가 2쌍이다. 그러나 파리목 곤충들은 날개 1쌍이 퇴화되어 1쌍뿐이다.

파리류에는 두 손을 잘 비벼대는 파리와 과일에 잘 모이는 초파리가 있다. 벌처럼 위장하고 꽃을 찾는 꽃등에와 모기도 포함된다. 흔히 왕모기라 불리는 긴 다리의 각다귀와 매처럼 날아다니는 파리매도 역시 파리류에 속한다.


/ 한영식(곤충연구가)
  소년조선일보·사이언스북스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