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29건. 지난해 12월 경찰청이 집계한 실종 어린이(지체장애인 포함) 발생 신고 건수다. 이 중 1만780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49명의 행방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실종 어린이 신고횟수는 2004년 4066건에서 2008년 9470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1359건이 늘었다.

실종이나 유괴 같은 어린이 대상 범죄는 오래전부터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범죄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어린이가 제대로 된 예방교육 한 번 못 받은 채 무방비 상태로 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영화 ‘아이들…’ 은 대표적 어린이 실종 사건인 ‘개구리 소년’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의 흥행을 계기로 실종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한 번 높아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소년조선일보는 오늘부터 3회에 걸쳐 심층기획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을 연재한다. 첫 회는 실종 어린이 가족의 절절한 사연이다. /편집자 주

2000년 6월 15일 오후, 전남 강진 동초등학교 앞. 수업을 마친 어린이 대부분이 부지런히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김모 군(당시 10세)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학교 앞 문구점에서 동생 성주 양(당시 9세)을 기다렸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성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김 군은 먼저 집으로 향했다. 20분쯤 걸려 집 앞 밭에 이르자, 어머니 강현숙 씨(당시 37세)가 물었다. “성주는 왜 같이 안 오니?” “어, 성주 아직 안 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강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학교 앞 큰집에 놀러 갔겠지.’

저녁 6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큰집에 전화를 건 강 씨는 성주가 오지 않았단 얘길 듣고 곧바로 학교에 연락했다. 학교 선생님은 성주가 오후 두 시쯤 교문 나서는 걸 봤다고 말했다. 그게 아홉 살 성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1년 동안 한순간도 닫힌 적 없는 대문

지난 17일 전남 강진에 위치한 성주네집을 찾았다. 11년이 흐른 지금, 성주의 집 앞 논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길이 하나 더 생겼다. 최근 문을 연 강진종합운동장도 한눈에 들어왔다. 성주의 어머니 강 씨는 “주변을 둘러본 지가 오래됐는데 지금 보니 그동안 이 마을도 정말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성주네 집이 있는 골목의 집 대문은 하나같이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골목 끝에 자리한 성주네 집 대문만은 훤히 열린 채였다. 대문을 고정시키느라 놓아둔 돌 주변엔 녹이 심하게 슬었다. 강 씨는 “성주를 잃어버린 뒤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주가 왔을 때 문이 잠겨 있으면 들어오지 못할까 봐….”

입구 전면에 걸린 액자에선 아홉 살 성주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실종되던 그해 어린이날 찍은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액자 귀퉁이엔 성주의 이름과 전화 번호가 적힌 명찰이 함께 꽂혀 있었다. “솔직히 자꾸 보면 마음 아프죠. 그래도 보고 싶은 딸인데 하루에 한 번은 봐야하지 않겠나 싶어 걸어놨어요.”

◆안 해본 일 없지만 제보는 ‘달랑 두 번’

성주가 실종된 뒤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매일 함께하던 등하굣길을 혼자 오가게 된 성주 오빠는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강 씨는 “둘째(성주 오빠)의 충격이 특히 컸다” 며 “꽤 활달한 아이였는데 동생이 사라지고 나선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성주 부모님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성주 찾겠다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전국을 돌며 성주 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TV 프로그램에도 나가봤죠. 성주 가마(머리에 털이 한 곳을 중심으로 빙 돌아나서 소용돌이 모양으로 된 부분) 주변이 빨간 편이거든요. 그래서 웬만한 미용실은 다 찾아다니며 포스터를 돌렸어요.”

하지만 지난 11년간 성주네 가족이 제보를 받은 건 단 두 차례뿐. 강 씨는 “한 번은 피자 박스 한 귀퉁이에 인쇄된 실종 어린이 사진을 보고 누군가 제보를 해왔는데 기대가 큰 만큼 절망도 컸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회사 제품을 홍보하던 분들이 성주를 본 것 같다고 연락을 해온 적도 있어요. 또 한 번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 성주를 찾진 못했어요. 그래도 제보해주신 분들에겐 그저 감사할 뿐이죠.”

◆“4년 후면 범인 찾아도 처벌 못한다니…”

현재 실종아동범죄에 대한 공소시효(公訴時效·범죄를 저지른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검사가 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져 재판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제도)는 15년이다. 만에 하나 누군가 성주를 유괴했다고 해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만약 우리 성주가 누군가에게 납치되거나 유괴된 거라면 언젠가 죗값을 치러야죠. 그런데 4년 후엔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고 하니….”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던 강씨는 취재를 수락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좀 더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면 혹시 성주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요즘은 많은 분이 실종 어린이를 찾기 위해 노력해주시고 실종 어린이 예방 교육 프로그램도 잘돼 있다더군요. 많은 어린이와 부모님이 이런 내용을 잘 숙지(熟知·충분히 앎)해 더 이상 성주같은 실종 어린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