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장군은 무신일까, 문신일까?" 강감찬은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었어. 여진 정벌에 나섰던 윤관, 외교 담판으로 거란을 물리친 서희도 모두 문신이었지. 고려 때는 군대의 총사령관을 문신이 맡고, 무신은 그 밑의 낮은 직책을 맡는 일이 많았단다.

고려는 문신에 비해 무신을 천대했어. 처음부터 무신을 천대한 건 아니야. 초기에는 문신과 무신을 동등하게 대우했지. 문신은 정치를 맡고 무신은 군사에 관한 일을 맡으면서 동등하게 역할 분담을 했어. 그런데 문신이 중심인 문벌 귀족의 입김이 점점 거세지면서 무신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어. 문신은 무신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고, 심지어 멸시와 모욕도 서슴지 않았단다. 그럼, 무신들의 불만이 많았겠다고? 맞아. 그래서 결국 무신들은 반란을 일으켜 왕을 갈아 치우고 정권을 잡았단다. 이 반란을 '무신 정변'이라고 해.

◇의종의 나들이와 무신들의 모욕

고려 18대 왕인 의종은 툭 하면 궁궐 밖으로 나들이를 나가 경치 좋은 곳에서 문신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술 마시고 시를 읊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아예 궁궐에는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어. 왕이 문신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동안, 무신들은 보초를 서면서 이들을 호위해야 했어.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말야.

1170년 8월 30일, 이날도 의종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나들이를 나섰단다. 전날 밤은 흥왕사라는 절에서 자고, 이날은 보현원으로 향했어. 보현원은 의종이 퍽 좋아하는 곳이었지. 길을 가던 의종은 오문이란 곳에 이르러 행차를 멈추게 하고 잔치를 벌였어. 무신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초를 서며 호위를 했지. 분위기가 무르익자, 의종이 말했어. "여기가 바로 군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곳이로군!"

그러면서 무신들에게 오병수박희를 시켰단다. 오병수박희란 당시 무신들이 즐겨 하던 무예로 택견과 비슷한데, 발보다는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택견과 다른 특징이야.

이윽고 오병수박희가 시작됐단다. 무신 중에 이소응이라는 나이 많은 장군이 있었어. 정3품의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지. 이소응은 젊은 무신과 겨루게 됐어. 나이가 많은 이소응은 적당히 겨루다가 힘이 부쳐서 기권을 했단다.

그때였어.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한뢰라는 젊은 문신이 이소응의 뺨을 후려쳤어. 이소응은 졸지에 뺨을 맞고 그만 섬돌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단다. 왕을 비롯해 구경하던 문신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어. 이 꼴을 본 정3품 상장군 정중부는 괘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단다.

문득 정중부의 머릿속에는 20여 년 전의 치욕이 되살아났어. 정중부가 서른아홉 살로 견룡군 장교였을 때야. 정중부는 왕을 모시고 나례에 참석했어. 나례는 귀신을 쫓는 의례인데, 왕과 신하들이 참석하여 온갖 재주를 펼치며 유쾌하게 노는 자리란다. 그런데 갑자기 내시 김돈중이 정중부의 턱밑에 촛불을 들이대는 바람에 정중부가 애지중지하던 수염이 타 버렸어. 김돈중은 김부식의 아들로,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기세가 등등한 인물이었지. 정중부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어.

이제 정중부는 65세의 노장이 됐어. 우람한 체격에 넓은 이마, 백옥처럼 흰 얼굴에 수염이 멋진 장군으로 무신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지. 정중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어. "이소응이 비록 무신이지만 벼슬이 정3품인데 어째서 이렇게 심한 모욕을 주는가!"

정중부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고 찔끔한 왕은 정중부의 손을 잡고 달랬어.

◇피로 물든 보현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어. 왕의 행차는 오문을 떠나 보현원에 도착했단다. 사실,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날 밤 보현원에서 거사를 일으키기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거든. 정중부는 몇 달 전부터 견룡군 장교 이의방, 이고와 함께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해 왔단다. 문신들의 횡포를 더는 참을 수 없으니 문신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자고 결의하고서 때를 기다려 왔던 거야.

의종은 보현원 안으로 들어가고, 따르던 문신들이 물러 나왔어. 그러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의방과 이고는 나오는 문신들을 죽여 버렸단다. 무신들은 그 길로 궁궐을 손에 넣고 의종은 거제도로, 태자는 진도로 귀양을 보내 버렸어.

이렇게 해서 무신들의 반란은 성공을 거두었단다. 이후 약 백 년 동안 고려는 무신들의 세상이 되었어. 이 기간을 '무신 정권 시대'라고 해.

★견룡군
궁궐에서 왕의 처소를 지키고, 왕을 호위하는 부대란다. 늘 왕의 곁에 있으므로 쉽게 왕의 총애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여서 누구나 부러워했지.

★고려의 내시
고려 시대의 내시는 조선 시대의 내시와 전혀 달라. 조선 시대의 내시와 같은 것을 고려 시대에는 환관이라고 했어. 고려 시대의 내시는 좋은 집안 출신의 유망한 젊은이로, 학식이 뛰어나고 장차 중요한 관직에 등용될 사람들을 말해.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 9재 학당을 세운 최충의 손자 최사추 등이 내시였단다.

★무신 정권 시대의 개막
정중부를 중심으로 한 무신들은 보현원에서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어. 그 후 약 백 년 동안 무신 정권 시대가 계속됐단다.


책과함께 어린이 제공·한국사 편지(박은봉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