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춘계 전국초등학교육상경기대회가 열린 경북 예천 공설운동장. 길게 뻗은 육상 트랙에선 대회 하이라이트인 400m 계주('4×100mR') 경기가 한창이었다. 최종 1위를 가리는 결승전에 오른 학교는 모두 5팀. "탕!"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선수들이 출발선을 박차고 나갔다. 모두 다음 주자에게 전해 줄 '바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곡선 주로를 지나자 다음 주자에게 바통이 전달됐다. 그중 최하위로 시작해 1위로 치고 올라가는 한 팀이 눈에 들어왔다. 스타트는 다소 늦었지만, 특유의 협동력과 스피드로 다른 팀을 제치고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을 끊었다. 전광판에 찍힌 기록은 53초16. 대회 신기록을 작성한 이들은 서울 염창초등학교 육상부 계주 대표인 박성민·서정훈(6학년) 군, 김준원·박지훈(5학년) 군이다.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써 낸 4인방을 28일 염창초에서 만났다.

학교 휴게실에서 본 네 어린이는 모두 새까맣게 얼굴이 타 있었다. 서정훈 군은 '훈련의 결과물'이라며 웃어 보였다. 염창초 육상부가 좋은 성적을 거둔 전국초등학교육상경기대회는 내로라하는 육상 유망주가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대회다. 이 대회에서 염창초는 400m 계주를 비롯해 남자 개인 100m, 2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두 대회 신기록이었다. "이번 대회는 저희에게 무척 중요했어요. 대회 전에 훈련도 열심히 했죠. 그래서 얼굴이 더 탔을지도 몰라요(웃음). 막상 대회 당일 승리의 기쁨을 나눌 생각을 못했어요. 비가 엄청나게 와서, 비를 피하기에 바빴거든요. 숨을 돌리고 나서야 실감이 났어요. 우리가 1위를 했구나라고요. 정말 뿌듯했답니다! 모두 덩달아 안고 좋아했어요."(서정훈 군)

염창초 육상부의 계주 종목 우승은 큰 의미가 있다. 현 선수들로 팀이 구성된 것이 한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6학년 주전 선수가 개인 사정으로 팀에서 빠지고 5학년인 김준원 군이 새롭게 팀에 합류했다. 주위의 걱정에도 이들은 한 달 새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줬다. 김은경(44) 염창초 육상부 코치는 "선수 한 명 한 명 모두 성실하고 협동력이 좋다. 팀이 새롭게 짜인 지 얼마 안 됐지만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합을 맞춰갔다"고 귀띔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 역시 이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오전 8시에 등교, 한 시간가량을 정해진 프로그램에 맞춰 훈련을 했다. 이는 방과 후에도 마찬가지. 기본적인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기량을 키워갔다. 시간이 날 때는 인근에 있는 중학교·고등학교 육상부와 합동 훈련을 하기도 했다. "아침에 운동하면 땀이 많이 나서,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기분은 상쾌해요. 훈련을 하면 할수록 나날이 육상 실력이 쌓여가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했답니다. 하지만 늦잠은 자고 싶네요(웃음)."(김준원 군)

얼핏 다 비슷해 보이지만 어린이 4명에게는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다. 빠른 스타트가 장점인 김준원 군은 '4×100mR' 경기에서 첫 번째 주자를 맡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단거리 전문인 박지훈 군이 나선다. 특히 직선 주로 구간이라서 박 군의 폭발적인 힘이 빛을 발한다. 서정훈 군의 경우 상승 흐름을 이어받아 네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마지막 주자의 역할은 어느 누구보다 막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육상부에서 가장 빠른 박성민 군이 이를 책임지고 있다. "계주는 각자의 장점을 잘 발휘해야 해요. 한 명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서로 신뢰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 4명은 이제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어요."(박성민 군)

전국초등학교육상경기대회 계주 우승을 일궈낸 이들의 다음 목표는 서울시 대항전을 비롯한 나머지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박성민 군과 박지훈 군의 경우에는 다가오는 전국소년체전에 도전한다. "저희는 계주 1위 달성뿐만 아니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싶어요. 모든 육상인의 꿈 아닐까요? 그리고 저와 성민이 형은 제주도에서 열리는 소년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단거리와 계주에 참가하게 됐어요. 저희 둘이 좋은 성적을 내라고 응원해주세요!"(박지훈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