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물결 모양, 정면을 응시하는 올빼미, 엎드린 사자, 부릅뜬 커다란 눈…. 그림 같기도 하고 암호 같기도 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하는 유일한 한국인이 있다. '이집트 문자 전문가' 강주현(44)씨다. 영국 리버풀 대학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한 그는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서 현지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이집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씨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체험하며 즐거워하는 영국 학생들을 볼 때마다 한국 어린이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며 웃었다.

"이집트 상형문자의 정식 명칭은 '히에로글리프'입니다. '신의 언어' '신성문자'라는 뜻이에요. 아주 오래전부터 이집트 왕의 무덤 벽화나 비석에서 이집트 상형문자가 종종 발견됐지만, 뜻을 해석하거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한마디로 죽은 문자였죠."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한 건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9년 이집트 나일강 하구의 도시 로제타. 한 프랑스 군인이 순찰 중 심상치 않은 돌부리를 발견한다. 주변 땅을 파 내려가자 곧 거대한 본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세로 114㎝, 가로 72㎝의 석판 위에 신비스러운 고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군인은 평범한 돌이 아님을 직감했고, 곧바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 스톤'이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로제타 스톤에는 상형문자(신성문자), 데모틱(이집트 민간문자), 콥틱(그리스어 알파벳을 빌려 쓴 이집트말 표기법)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어요. 프랑스 천재 언어학자 샹폴리옹은 세 가지 문자로 기록된 게 같은 내용일 거라고 예상했어요. 때마침 콥틱을 알았던 샹폴리옹은 콥틱을 상형문자에 하나하나 대입해가며 로제타 스톤에 새겨진 상형문자의 90%를 해독해냅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동물과 식물, 인체와 사물의 형태를 담고 있다. 독수리, 뱀, 갈대 이삭, 소용돌이, 정강이 등 영어의 알파벳에 해당하는 그림 문자가 700개에 달한다. 소리나 의미만 나타내는 문자도 있고, 소리와 의미 둘 다 가지는 문자도 있다. 신성문자라는 이름대로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상위 1%만이 읽고 썼던 고급 언어다.

강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이집트 상형문자를 배우기 위해 2002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대학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해 이집트학 석사과정까지 밟았다. 그는 "아홉 살 때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이 운명을 바꿔놨다"고 했다. "아버지 서재에서 놀다가 토인비의 '인간의 역사'라는 책을 열어보게 됐어요. 거기서 이집트 여신인 '이시스'의 신전 사진을 봤는데 옆에 아름다운 상형문자가 쭉 그려져 있었어요.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그게 고대 이집트인들이 썼던 상형문자라고 했어요. '언젠가 꼭 이 글자들을 읽고 말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이집트 문자를 연구하다 보니 재미있는 규칙이 많더라"며 웃었다. '운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좌절하는 사람 그림이, '나쁘다'라는 단어에는 참새 그림이 꼭 들어간다. 이집트에선 참새를 흉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라는 단어에는 심장 그림이 들어가요. 심장을 세 개 그리면 '너무 아름답다'는 뜻이 되지요. 이집트 왕인 람세스 2세에게 '네페르티티'라는 왕비가 있었는데, 이 이름에도 심장 세 개가 그려져 있어요. 이렇게 예쁜 여자는 앞으로 영원히 없을 거라는 글귀와 함께요."

최근 강씨는 한국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한 책을 만들었다. 수천년 전 파피루스에 기록된 이야기를 한국어로 해독한 우리나라 최초 이집트 전래동화 시리즈다. 첫 권 제목은 '이집트의 신비로운 섬'(정인출판사). 그는 "영국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 어린이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어 거절했다"고 했다. 일러스트도 직접 그렸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것도 이 책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문자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누구나 재밌게 공부할 수 있어요. '이집트 상형문자표'도 동화책에 함께 수록했어요. 심장은 '이브', 친구는 '세누', 나무는 '케트'.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을 고대 이집트 발음으로 읽어보는 즐거움도 느껴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