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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Edwin Powell Hubble : 1889 - 1953)


미국인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1889년 11월 미국 몬태나주의 미주리 미시필드에서 어머니 버지니아 제임스와 아버지 죤 허블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외부 은하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의 아버지가 시카고에 있는 보험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근교에 있는 휘튼에 살았다. 허블이 어렸을 때 한번은 그의 할아버지가 화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12살 난 꼬마 허블의 대답이 하도 기특해서 스프링필드 신문에 싣기도 했다.

허블은 젊은 시절 신문 배달을 하며 용돈을 벌었다. 고교 시절 그는 축구나 트랙 경기같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고 졸업 후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카고 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착오로 인해 다른 학생 한 명과 장학금을 함께 받게 되어 학비의 절반을 허블이 부담해야 했다. 허블은 가정 교사나 실험 조교 등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처음에는 법률에 관심이 있어서 시카고대학 법과에 입학하여 1910년 졸업하였다. 그리고, 로즈 장학생이 되어 영국으로 유학하였다. 영국 옥스포드 퀸스 칼리지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1913년 귀국하여 켄터키주의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곧 법률에 싫증을 느껴 그만두고 천문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마침내 그는 천문학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위스콘신에 있는 시카고대학교의 여키스 천문대에서 천체 관측에 몰두하였다.

1. 허블의 업적

1917년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죠지 헤일(George E. Hale)로부터 캘리포니아의 윌슨 산 천문대에서 같이 연구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것은 허블에게 있어 더없이 좋은 기회였으나 1차 대전으로 인해 보병 장교로 참전해야만 했다. 그는 프랑스로 파병되었다가 1919년 미국으로 돌아와 제대한 후 곧바로 윌슨 산 천문대에 들어갔다. 60인치 망원경으로 은하계의 성운을 관찰하고, 은하계인 성운과 은하계가 아닌 성운을 구별하기 위한 분류 체계를 세웠다.

윌슨 천문대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외부 은하에 관련된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윌슨산 천문대에 있는 동안 지름 252cm 망원경으로 성운을 관찰하는 일에 전념하여 1923년 나선은하(소용돌이 성운) 중에서 세페우스형 변광성을 발견하고 거리를 측정하여, 모든 성운이 수십만 광년 떨어진 은하계 밖의 먼 곳에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소용돌이 성운이 외부 은하임을 입증하였다. 즉 태양이 속한 거대한 항성계인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22∼1924년).

1924년에 허블은 안드로메다 성운에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내부에 수많은 별이 있다는 것과 그 별들 중에 몇 개의 세페이드 변광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광도와 거리의 관계를 통해 그는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가 약 80만 광년이라고 밝혔다. 물론 후에 200만 광년으로 다시 밝혀졌지만 어쨌든 우리 은하계 밖에 성운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연구를 계속한 그는 성운 중에 이보다 훨씬 더 먼 10억 광년 저 쪽에 있는 것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더욱 연구를 추진한 후 허블은 성운을 그 형태에 따라 나선형, 타원형, 불규칙형으로 분류했다.

1925년 은하계 밖의 은하에 대한 총괄적인 연구를 시작하여 모양에 따른 분류를 시도하였다.

2. 허블의 법칙


허블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은하계까지의 거리와 은하계가 바깥 방향으로 멀어져 가는 속도는 비례한다는 허블의 법칙을 발견한 일이다. 이 발견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제안이후 가장 중요한 천문학적 발견으로, 우주 팽창설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우리 은하계 밖에 있는 은하는 '섬 우주'로 불리게 되었다. 광대한 우주에서 보면 은하계 밖의 은하도 그 곳에 점처럼 존재하는 섬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29년부터 허블은 이 섬 우주의 시선 속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각각의 섬 우주의 시선 속도를 결정했는데 놀랍게도 우리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섬 우주일수록 그것에 비례한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우주의 팽창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그 후에 유도된 결과와도 일치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우주 전체는 하나의 점이었고 그곳에서 빅뱅이 일어나 우리의 우주가 생긴 것이 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v=Hr이 된다. 섬 우주의 후퇴 속도 v와, 우리로부터 섬 우주까지의 거리 r 사이에는 정비례 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허블의 법칙이라고 하며 H는 허블 상수라고 불린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허블의 생각은 옳았으나, 그가 계산한 상수값에 의하면 우리 은하가 다른 모든 은하들보다 크며, 우주의 나이가 예상하고 있는 지구의 나이보다도 적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틀린 것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다른 천문학자들이 허블의 이론을 고수하면서도 결과를 수정하여 우주는 100억∼200억년에 걸쳐 일정한 속도로 팽창해 왔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나선 은하의 스펙트럼>

 

허블은 윌슨 산 천문대에서 1942년까지 일하다가 2차 대전의 발발로 다시 참전했고 1946년에는 무공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팔로마 산 천문대에 들어갔고 1948년 팔로마 산 천문대에 지름 200인치(약 500cm) 망원경이 설치되자 본격적으로 우주 탐사에 들어갔다. 허블은 그 후에도 연구 활동을 계속하다가 1953년 뇌 혈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허블은 천문학에 대한 업적으로 많은 영예와 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성운 스펙트럼의 적색 편이》(1934년)가 있으며, 그가 죽은 후 1961년 샌디지가 편집하여 출판한 《허블 은하 도감 》이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열성적으로 은하를 관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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