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PDF서비스 소년조선DB 소년조선을 읽고 보도자료

  Sitemap help

 

기사모음

컴퓨터/인터넷

책동산

신기한 과학나라
 
 

이게 궁금해요
  알쏭달쏭 퀴즈
  재미있는 실험실
>   과학자 이야기
  궁금 쫙!
  놀며 배우며
  부엌 실험실

Hello English

신문으로 공부해요

글동산

NIE
 

조선일보
NIE
글로벌 에티켓
조선일보 DB
 

> 재미있는 공부 > 신기한 과학나라 > 과학자 이야기

케플러 (Johannes Kepler(1571~1630))


1. 케플러의 생애

독일의 천문학자.
그는 한달 일찍 태어난 조산아로서 병약했지만 찬란한 정신의 소유자 였다.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에 천연두를 앓는 등 육체적인 병약함과 경제적인 빈곤 속에서 자랐다. 17세에 아버지가 전상으로 죽자, 이듬해 튀빙겐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159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신학에 싫증을 느끼고, M.메스트린 교수로부터 소개받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감동되어 천문학으로 전향하였다.

94년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는 한편, 점성력의 편수를 위촉받아 일하면서, 그 해 겨울의 강추위와 전쟁을 예고한 것이 적중하여 좋은 평판을 받았다.

 

95년 천체력을 발간하고, 이듬해 《우주구조의 신비》를 출판하여 행성의 수와 크기, 배열간격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이로 인하여 T.브라헤와 G.갈릴레이를 알게 되었다. 당시는 신교와 구교의 싸움이 격렬하였으므로 신교신자인 케플러는 구교파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았다.

그 후 1600년 그라츠대학을 떠나 프라하로 옮겨 브라헤의 제자가 되었다. 이곳에서 루돌프 2세의 보호를 받으며,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였고, 브라헤가 16년간에 걸쳐 연구한 화성 자료를 브라헤의 임종시 인계받았다.

1601년 브라헤의 후임으로 궁정의 수학자가 되었다. 그 후 행성들의 합(合)을 연구하던 중에 뱀주인자리에서 초신성(超新星:케플러신성)을 발견하였다(1604).

1609년 화성관측 결과를 《신 천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여기서 행성의 운동에 관한 제1법칙인 '타원궤도의 법칙'과 제2법칙인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을 발표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수정·발전시켰다. 또한 운동의 기인으로서 태양의 자전에 따른 자기적 추진력을 제안하였다.

11년에는 천연두로 아내와 한 아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굴절광학:Dioptrice》을 저술하여 케플러식 망원경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12년 루돌프 2세가 죽어 더이상 궁전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자, 린츠대학의 수학교수 겸 측량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19년 《우주의 조화:De Harmonices Mundi》를 출판하여, 행성의 공전주기와 공전궤도의 반지름과의 관계를 설명한 행성운동의 제 3법칙을 발표하였다.

26년 종교전쟁을 피하여 울름으로 이전하였고, 다음해에 로그를 사용하여 행성의 위치를 계산한 《루돌프표:Tabulae Rudolphinae》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원양항해자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었다.

28년 발렌슈타인 후작의 전속 점성술사가 되어 슐레지엔으로 거처를 옮겼다. 30년 11월 15일 길에서 급사하였다.

 

2. 행성의 운동연구

케플러의 시대에는 많은 천문학자들이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지구는 그 축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천문학자들은 행성이 원형궤도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본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즉, 수성과 금성은 저녁이나 새벽하늘 높이 떠 있다가 낮아지지만 항상 태양부근에 있고, 반면에 화성, 목성, 토성은 밤마다 동쪽으로 움직이는데 가끔씩은 서쪽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케플러는 행성궤도를 다른 형태로 취해서 이들 운동을 설명해보기로 작정했다. 화성이 가장 대표적인 문제거리였고 또, 그가 티코 브라헤의 평생동안의 정확한 관측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케플러는 화성의 운동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원운동의 모든 가능한 조합을 시도하여 화성의 관측된 위치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당시의 불충분했던 수학적 방법에 의존하여 6년 동안의 믿을 수 없는 노력 끝에 그는 해답을 찾았다. 즉, 화성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서 다른 속력을 가지고 타원궤도를 선회한다는 것이다. 1609년에 그는 이 연구결과를 "새로운 천문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는 다른 행성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운동이 화성과 같음을 알아냈다. 그는 또 공전주기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와 정확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케플러의 행성운동에 관한 위대한 업적은 "케플러의 법칙"으로 알려진 세 원리로 요약된다.

 

3. 케플러의 법칙 Kepler's laws

♧ 케플러 제 1법칙 ; 타원 궤도의 법칙
"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을 하고 있다 " 라는 법칙이다. 그 예전에는 행성은 완전한 원운동을 한다고 셍각했는데 케플러가 화성의 운동을 몇 십 년 간 관찰한 결과 타원 궤도로 운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 케플러 제 2법칙 ;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 단위 시간 동안 휩쓸고 지나간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 " 라는 법칙이다. 좀 어렵게 느껴 지겠지만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태양에 가까울 때는 지구는 빨리 돌고 태양에서 멀 때는 지구는 느려지는 것을 설명한 법칙이다. 거리가 작을 때면 (가까워지면) 속도가 빠르고 거리가 커지면 (멀 때) 속도가 느려져야 면적속도 (거리 X 속도) 의 값이 일정하게 된다.
그래서 태양 가까울 때(우리나라 겨울임)는 지구의 공전 속도가 크며 태양에서 멀 때(우리나라는 여름임)는 지구의 공전 속도가 작아진다.
이런 법칙때문에 태양에 가장 가까운 수성의 공전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이다.

♧ 케플러 제 3법칙 ; 조화의 법칙
"공전주기의 제곱은 궤도장반경의 세제곱과 비례한다" 라는 법칙이다. 이것은 태양계의 어떤 행성에서나 공전주기 제곱분에 행성궤도의 긴반지름제곱은 항상 일정하다라는 말이다.
하늘에 도는 천체들이 멋대로 도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화 속에서 돈다는 법칙이다. 그래서 3법칙을 조화의 법칙이라고 한다.
제1법칙과 제2법칙은 주로 화성을 관측하여 얻은 것으로, 1609년에 발표되었고, 제3법칙은 이보다 10년 후에 발표되었다.

케플러의 시대는 그 때까지 사람들이 믿어온 천동설에 대해 지동설이 도전하던 시기로, 브라헤는 원래 천동설을 옹호하려고 행성의 위치를 측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케플러는 비록 브라헤의 제자였지만, 지동설의 입장에서 지구의 공전궤도를 원이라 가정하고 화성의 공전궤도를 기하학적으로 작도해 본 결과, 그 궤도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케플러 이전에는 지동설의 주장자들도 행성의 궤도가 원이라고 믿고 있었다.

케플러의 법칙은 후에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데 핵심적인 수학적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이들 법칙은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에 대해서 알려져 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 나중에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이용해서 그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웠다. 케플러는 갈릴레오로부터 망원경의 발명소식을 들었고, 이어서 광학분야의 선구자적인 값진 일들을 했다. 현대와 같은 형태의 천문망원경을 발명한 사람도 케플러였다. 광학에 대한 그의 책이 1611년에 출간되었는데 그것은 이 분야에서 첫번째였으며, 빛과 렌즈에 대한 광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163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학설이 당시의 상황에서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오늘날에도 확인할 수 있다. 수학 공식을 총 동원한 케플러의 증명법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간직해 둘 만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케플러의 이러한 위대한 발견은 최근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추진하고 있는 '케플러 미션(Kepler Misson)' 을 통해 일반인들에세 선보이고 있다. 이 계획은 케플러가 발견한 3법칙의 충격이 현대 과학 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계 밖에서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별을 찾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4. 케플러의 공쌓기 문제

1609년 독일의 과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닌 타원형임을 발견하여 천문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으며, 이것은 뉴턴이 만유 인력 법칙을 발견할 때에도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케플러는 다양한 분야의 수학들을 모두 섭렵하진 못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대단한 일가견을 갖고 있다. 케플러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귤 같은 구형의 물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쌓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1611년에 케플러가 자신의 후원자인 존 와커(John Wacker)한테 신년선물로 헌정한 <눈의 6각형 결정구조에 관하여>하는 제목의 논문에서 처음으로 거론되었다. 케플러가 다음과 같은 논리로 눈의 결정이 6각형으로 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모든 눈송이는 애초에 6각 대칭구조를 가진 조그만 덩어리로 탄생하여 대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크기가 커진것이다. 대기중에는 바람과 온도,습도등이 계속적으로 변하고 있으므로 성장 조건에 따라 미세한 부분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눈송이의 원천인 중앙부의 덩어리는 크기가 워낙 작기 때문에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게 자라나서 6각 대칭구조가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케플러는 타고난 그림솜씨로 눈의 결정구조를 정확하게 그려냄으로써 결정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케플러는 물질을 구성하는 작은 입자들의 배열 상태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던 끝에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부피를 최소화 시키려면 입자들을 어떻게 배열시켜야하는가?' 모든 입자들이 구형(탁구공모양)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쌓는다 해도 사이에는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빈틈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쌓인 공이 차지하는 부피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플러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에 대하여 그 효율성을 일일이 계산해 보았다.

<페르마 마지막 정리>와 마찬가지로, 케플러의 공쌓기 문제 역시 쌓는 방법의 수가 무한히 많기 때문에, 그 원수 같은 '무한대'를 정복하는 것이 해결의 열쇠이다. 지난 380년간 케플러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 마녀로 몰린 어머니에 대한 애증

중세 후기 1600년을 전후해 유럽에서는 전무후무한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종교적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수십만의 '마녀'가 공개적으로 처형당하는 잔혹한 살육의 시기였다. 어떤 역사가들은 마녀사냥의 저변에 여성을 집단으로 살해하려는 의도가 깔려있J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방직산업을 비롯한 임노동직으로 진출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시작하자 남성이 지배하던 사회질서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됐다. 그래서 여성 통제를 위해 마녀사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증명하듯 마녀로 몰렸던 여성 중 적지 않은 수가 가부장제적 가족에 동화되지 않은 여성, 즉 결혼을 거부한 여성(방적공), 남편보다 오래 산 여성, 산파, 주술사 등 육체적이나 경제적, 지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을 그리며 돈다고 주장한 천문 학자 케플러. 그의 어머니 역시 이런 분위기에 휩쓸린 희생양이었다.

케플러의 어머니 카타리나는 아픈 사람을 보면 약초와 주문으로 병을 고쳐주곤 했다. 하지만 치료에 곧잘 실패해 미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중 이 마을에 살던 광신적인 마녀사냥꾼이 여러 소문을 모아 49개 항목으로 된 고발장을 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녀가 70세 되던 해인 1615년의 일이었다.

케플러는 법정에 탄원서를 써서 누명을 벗겨달라고 간청했으나 허사였다. 그녀가 법정에 처음 선 1619년 증인들은 그녀가 죄를 저질렀다고 증언했고, 이에 대해 케플러는 1백22항목에 달하는 반대 심문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법정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케플러의 어머니는 꿋꿋이 버텼다. 자신은 마녀가 결코 아니며 아들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외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그녀는 1621년 석방됐다. 사망하기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케플러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비록 노령의 어머니를 구하고자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속으로는 어머니를 상당히 싫어한 듯하다. 마녀재판이 열리던 1619년은 바로 케플러가 제3법칙(행성이 태양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공전주기의 제곱은 행성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을 발표한 해였다. 과학 연구에 몰두하던 시기에 마녀로 몰린 어머니를 구하는 일이 그렇게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케플러 사후에 출간된 '꿈'이란 책에는 어머니를 달에서 온 악마와 접촉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사실 '꿈'은 인간의 달 여행을 서술한 최초의 SF 소설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과학적 모양새를 갖췄다. 예를들어 우주비행의 어려움에 대해 "최초의 운동이 가장 괴롭고 위험하다. 화약의 힘을 빌려 몸이 하늘로 던져 올려지기 때문"이라고 묘사했으며, 성층권에 들어서면 "혹독한 추위가 닥치고 호흡할 공기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편 케플러는 달을 뜨거워 바싹 말라버리거나 얼어붙은 무서운 세계로 표현했으며, 이곳에 뱀같이 생긴 거대 종족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거나 땅에 기어다니는 상황을 묘사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영향을 준 악마의 실체였다.

 

6. 천재과학자들의 엉뚱한 행동-천체에서 들리는 음을 악보로 제작

케플러는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발전시켜 우주의 화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시도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우주의 화음을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피타고라스에 따르면 천체의 행성들은 움직이면서 고유의 음(音)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케플러는 이 독특한 우주론에 영향을 받아 우주의 화음을 악보로까지 제작했다.

피타고라스는 태양과 달, 그리고 5개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지구 주변에 원을 형성하며 돈다는 천동설을 주장했다. 그런데 태양이나 행성이 자신의 궤도를 움직일 때 마치 하프 현을 퉁기는 듯한 음악의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화음이 조화를 이루면서 우주는 완벽한 질서를 갖추며 유지된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이 '천체의 화음'이 매우 커다란 소리인데도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속 이 소리를 들어와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피타고라스 자신은 별들의 음악이 들린다고 주장했다.

중세까지 이어진 천동설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동설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와 달리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원이 아니라 타원 궤도로 움직인다는 점을 과감히 주장해 천문학 분야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발전시켜 우주의 화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시도했다.

케플러에 따르면 우주는 원형의 현을 갖춘 모양의 거대한 현악기이며, 천체가 움직이면 마치 현을 퉁겼을 때처럼 공기가 진동되며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합주의 지휘자는 태양이다. 이 천체의 합주로 하늘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방식을 이용했는지 모르지만 케플러는 각 행성이 운동할 때 내는 선율을 구별해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내는 선율은 '미, 파, 미'에 해당한다. 케플러는 미(mi)는 괴로움(miseria), 그리고 파(fa)는 기아(fames)의 약자로 해석했다. 그래서 지구에는 늘 근심과 굶주림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케플러는 자신이 이룩한 천문학적 업적에 비해 당대에 이렇다 할 명성을 얻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하지만 그는 이 점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천체의 신성한 조화음을 들은 것만으로도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 Top

 




Copyright (c) 2001 DIGITAL CHOSUN All rights reserved.
Contact child@chosun.com for more information.
Privacy Statement Contact privac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