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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1882 ~ 1895)



프랑스 출생의 화학자, 미생물학자이다. 발효나 부패를 연구하였고 85년에는 광견병의 왁찐을 발명하고, 그 예방 접종에 성공했다. 세균의 자연발생설을 타파하고 각종 질병이나 부패 현상 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원인균에 의한 것이라는 '세균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파스퇴르는 1822년 12월 27일 프랑스 동부의 쥐라 산맥중의 시골 도르에서 태어났다.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는 파스퇴르에게 교사가 되기를 바랬다고 한다. 소년시절 파스퇴르는 특히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따라서 장래는 미술을 전공하여 대학교수가 되는게 꿈이었다고 한다.

17세 때, 파스퇴르는 한때 어떤 학교의 조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교단에 선 것이 아니라, 소년들의 학업의 진행 상황을 조사하거나, 기숙사의 생활을 감독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일요일에는 소년들과 함께 예배에 출석하고 목요일에는 산책하러 데리고 나갔다. 어느 날 학생 중 한 명이 현미경을 가지고 나와 파스퇴르에게 곤충을 조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이 그의 장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랑스의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초등 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파스퇴르의 학업성적은 아주 평범했다.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장점이고 수학은 중위의 성적. 화학도 중간치였다. 20세에 디죤대학의 학사학위를 취득했을 때, 화학의 성적은 20명중 15 등이었다고 한다. 학생시절 때 파스퇴르는 그림을 좋아했는데 특히 초상화가 뛰어났다. 파스퇴르 자신도 한때는 미술교수가 되기를 희망할 정도였다. 그런 파스퇴르를 화학의 길로 나아가게 한 것은 화학자로서 업적이 있었던 디죤대학의 듀마교수 였다. 듀마의 강의를 듣고, 파스퇴르는 화학의 연구에의 정열을 불태운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파스퇴르의 면학은 진행되고 성적도 점차로 올라가서 졸업 후에는 듀마교수의 조수로서 대학에 남았다.

 

파스퇴르업적

1957년 모교인 고등사범학교의 교수가 된 그는 20년 동안 발효문제에 관해 연구했다. 파스퇴르가 릴이과대학에 있을 무렵 그는 이 도시의 알콜 제조업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부탁을 받았다. "나의 공장에 있는 나무통 안에는 암만해도 알콜이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알콜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발효에 관한 파스퇴르의연구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양조산업은 너무 빨리 쉬어버리는 포도주 때문에 매년 수천만 프랑의 손실을 입고 있었다. 그는 발효액에 있는 박테리아가 그 원인임을 밝혀냈고, 1863년 약 55℃로 가열하면 포도주는 변질시키지 않고 박테리아의 독성만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의 시초였다.

1864년 정부와 과학아카데미의 의뢰를 받아들여 누에의 질병에 대해 조사한 그는 누에병의 원인이 되는 두 가지 박테리아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농민들은 파스퇴르의 동상을 세워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도중 파스퇴르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즉 여러 질병이 해로운 미생물 즉 세균이나 박테리아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1873년 탄저병이 발생하여 소와 양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파스퇴르는 탄저병의 원인이 박테리아임을 밝혔고, 닭의 콜레라균도 배양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를 발판으로 그는 1881년 탄저병 백신을 만들 수 있었고, 나아가 '세균 병인설'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1888년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은 돈으로 '파스퇴르 연구소'가 파리에 세워졌는데, 이 연구소는 에이즈(AIDS) 바이러스를 최초로 분리해 내는 등 현재 세계 최고의 미생물학 관련 연구소이다.

 

파스퇴르와 백신

탄저병이라는 매우 무서운 병이 있었다. 이 병은 가축들에게 생기는 전염성이 강한 병이었다. 이 병이 유행하게 되면 수천 마리의 면양과 소, 말들이 죽어갔다. 일반 농가에서는 이 병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특히 면양을 기르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 병에 의한 면양 업자의 손해는 연간 수백만 프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탄저병에 걸린 면양은 다리가 약해지고 무리를 따라 다닐 수 없게 되며 비틀거리다가 몸을 떨고 괴로워 허덕였다. 이 병에 걸린 면양은 아주 갑자기 죽어 버리기 때문에 양치는 사람은 양이 계속 죽는 것을 보고 양들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파스퇴르는 연구 결과 탄저병으로 죽은 동물에 있던 세균이 살이 있는 동물에게로 옮겨져 이 병이 퍼지는 것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므로 건강한 동물이 균에 오염된 목초지의 풀을 먹으면 곧 전염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런 땅에서는 병으로 죽은 동물의 몸을 먹고사는 벌레가 세균을 몸에 묻히고 지면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알아낸 파스퇴르는 탄저병 백신을 만들었으나 많은 의사나 수의사들은 그의 백신 사용을 반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 실험을 하게 되었다. 많은 의사들이 그를 비웃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실험 결과는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였다.

공개 실험에서 60마리의 면양이 파스퇴르에게 맡겨졌는데 그는 나중에 비교하기 위해 10마리는 따로 남겨 놓았다. 50마리 양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파스퇴르와 조수들은 25마리의 면양의 한쪽 귀에 구멍을 뚫고 곧 이들에게 탄저병 백신을 접종했다. 그 뒤 50마리의 면양을 목장에 풀어놓았다.

그 다음 2주일 사이에 접종을 받은 면양들은 가벼운 병에 걸렸으나 모두 회복되었다. 며칠 후 파스퇴르와 조수들은 목장에 가서 백신을 한번 더 접종했다. 그 후 면양들은 두 번째의 병에서 회복될 때까지 그냥 두었다.

다시 2주일 후 파스퇴르가 목장에 왔다. 이때에는 50마리의 면양 전부를 맹독의 새로운 배양균을 오른쪽 다리에 주사했다. 파스퇴르는, 접종을 하지 않았던 25마리의 면양은 전부 죽을 것이나 접종 받은 면양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별 증상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든 것은 파스퇴르의 예측대로 적중했다. 25마리의 면양은 모두 죽었으나 ,접종을 받은 면양은 모두 살았다. 공개 실험을 하고 나서 2년 이내에 10만 마리의 동물이 접종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탄저병으로 죽은 것은 단지 650마리뿐이었다. 접종을 받지 않은 면양은 10만 마리당 약 9천 마리가 죽었다. 그 뒤 12년 동안 300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접종을 받았다. 파스퇴르의 이와 같은 예방접종은 10년간 프랑스에 28만 파운드나 벌게 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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