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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이야기
장영실
장영실은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로 본관은 아산(牙山)입니다.
기생의 아들로 동래현의 노비 출신이었지만 농기구, 무기 등을 고치고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세종대왕의 명으로 중국에서
공부하였습니다.
1423년(세종 5년)에 왕의 특명으로 상의원 별좌라는 벼슬을 가지게 되면서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궁중 기술자로
활동하였습니다.
1434년에 우리 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를 완성하고, 1437년에는 소간의와 대간의를 비롯하여 해시계인 현주일귀,
앙부일귀, 정남일귀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441년에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하는 등 기계,
건축,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특히
측우기(사진)는 주철 또는 청동으로 만든 원통형의 측우기 본체와 이를 세우기 위하여 돌로 만든 측우대, 그리고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기 위한 자(주척을 사용함)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탈리아의 '베네데도 카스텔리(benedetto
castelli)'가 만든 우량계(1939)보다 198년이나 먼저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빛나는 유산입니다.
최초로 만들어진 측우기는 깊이가 2자(약 40cm), 지름이 8치(약16cm)로서 측정할 때 너무 깊고 무거워서
취급하는데 불편하여, 이듬해(1442)부터 크기를 약간 줄여서 깊이 1자 5치(약 30cm), 지름 7치(약 14cm)로
하였고, '측우기'라고 정식으로 불렀습니다.
이 측우기는 1910년경만 해도 경복궁의 관상감과 함흥, 대구, 공주의 감영 등에 4기가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으나,
지금은 그 동안 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단 1개만 남아있고 현재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과학과 기술에 있어 아주 훌륭한 많은 업적은 남긴 장영실은 1442년에 직접 임금이 탈 새로운 가마를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종묘 행차에 이 가마를 타고 나갔으나, 가마가 부서져 벼슬에서 쫓겨났습니다.
일화
어느 날, 나이 많은 관노 한 사람이 우물물을 길어 올리다가 그만 두레박 무게가 너무 무거워 넘어지는 바람에 다치고
말았습니다.
"아이쿠야."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으음, 어떻게 하면 힘을 덜 들이고 물을 길어 올릴 수 있을까?'
장영실은 요모조모 살펴보고 연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레방앗간 옆을 지나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며칠 후, 우물에는 장영실이 만든 도르래가 달려 있었습니다.
장영실은 주변에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또한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고쳐보려고 항상 노력하였답니다.
| 1434년 (세종 16)에 장영실, 이천 등이 만든
물시계이다. 물이 흐르는 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도록 만들었다. 나무로 되어 있으며,
경복궁 남쪽의 보루각에 설치하여 표준 시계로 쓰였다. 이러한 물시계는 이미 718년 (성덕왕 17)에 만들어져
누각, 또는 경루라고 불려 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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