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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이야기
베게너 (1880~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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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게너 일가(왼쪽부터 할머니, 아버지, 베게너, 형,
누나)와 제 1차 세계 대전 때의 베게너> |
지구표면 형태에 관한 대륙 이동설로 유명한 베게너, 그는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자신의
대륙 이동설을 증명하기 위해 정열적인 탐험 조사를 하다가 그린란드의 얼음벌판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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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상공에 기구를 띄워 온도를 조사하는 모습(왼쪽)과
1년 동안에 빙하가 녹는 양을 측정하는 베게너> |
베게너는 그린란드에서의 기상학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대기권의 열역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학계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던 중에도 베게너는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대륙 이동설에 대해 연구를 끈질기게 해 오고 있었다. 드디어 191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 지질학회에서 마르부르크 대학의 기상학 강사인 베게너는 대륙 이동설을 논문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하나의 초대륙이 분열하여 오랫동안 이동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대륙이 이루어 졌다는 학설이었다. 즉 현재에도
오스트레일리아와 남극을 제외한 지구상의 5대 대륙이 서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질학자들로부터 '전문가도
아닌 기상학자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가'하고 격렬한 비판만 받게되었다.
당시
그가 존경하던 스승은 함부르크 대학의 유명한 기상학 교수 쾨펜이었다. 쾨펜은 베게너의 재능을 알고 기상학 외에 너무
산만하게 흥미를 분산시키지 않도록 충고했으나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의 대한 열정과 집념은 끊기지 않았다.
그 후 배게너는 다시 덴마크 탐험대와 동행하여 두 번째의 그린란드 탐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며 스승인 쾨펜교수의
딸과 결혼하였다. 베게너는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 <베게너의 만년 모습> 계대전에 참가하였다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후방에 잇는 측후소에서 근무하였는데 그 덕분으로 대륙 이동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전쟁중인
이듬해 그의 이론은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 뒤에도 새로운 내용과 예증을 보강하여
두 차례나 개정되었다.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의 근거로 삼은 많은 증거는 현대 과학으로 보아도 대부분이 옳은 것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믿지 않았다. 그러한 근본 원인은 대륙을 이동시키는 원동력을 확실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맨틀 대륙설이나 해저 확장설판 구조론등에 의해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대륙 이동설을 확인하고 검증하기
위해 평생의 정열을 쏟은 베게너는 1930년에 그의 이론을 키워 준 그린란드의 빙원에서 안타깝게도 50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안타깝게도 그의 이론이 새로운 학문에 의해 증명되기 20여년 전의 일이었다. 베게너의 몸 속에 들끓고
있던 모험의 피는 대륙 이동설을 완성시키기 위해 온갖 분야의 연구에 나서게 했다. 또 미지의 그린란드를 4번씩이나
탐험하여 고공기상이나 빙하에 관한 연구에 온 정열을 바쳤으나 냉엄한 자연에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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