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열의 용맹한 무기도감] ‘마징가Z<제설 차량>’로 변신한 전투기, 순식간에 활주로 눈 증발시켜요
정리=현기성 기자 existing26@chosun.com 입력 : 2024.02.20 22:00

공군 SE-88 제설 차량

	공군1전투비행단의 SE-88 제설 차량이 눈 덮인 활주로에서 제설 작전을 펼치고 있다. /공군
공군1전투비행단의 SE-88 제설 차량이 눈 덮인 활주로에서 제설 작전을 펼치고 있다. /공군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것 같아요. 여러분은 올겨울 즐겁게 눈을 만끽했나요? 어린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반가운 겨울 손님이 눈이지만, 사실 국군 장병들에게는 '고통 그 자체'랍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안 보이는 제설(除雪·쌓인 눈을 치움) 작업 때문이죠. 우리 군의 각종 무기 체계와 장비들이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 장병들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려면 눈이 쌓여서는 안 되거든요. 그러니 장병들에게 눈은 치워야 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겨울이 끝나기 전에 무기, 무기 체계가 아닌 아주 특별한 제설 장비를 소개할까 해요. 바로 대한민국 공군만이 사용하는 특별 제설 차량 SE-88입니다. SE-88의 이름은 말 그대로 제설 장비(Snow Equipment)-88입니다. 여기서 숫자 '88'은 무슨 의미일까요? 생각보다 단순해요. 바로 이 장비를 개발한 해가 1988년이거든요.
 [맹수열의 용맹한 무기도감] ‘마징가Z<제설 차량>’로 변신한 전투기, 순식간에 활주로 눈 증발시켜요
SE-88을 공군만 사용하는 이유는 퇴역 전투기의 제트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전투를 하기엔 너무 오래돼 퇴역했지만, 전투기의 엔진은 여전히 엄청난 힘을 갖고 있어요. 제트기 엔진이 내뿜는 뜨거운 바람으로 눈을 순식간에 녹이고 날려버리는 게 SE-88의 기본 원리입니다. SE-88을 한번 운용하면 활주로에 쌓인 눈은 20~30m 밖까지 날아가 버린답니다. 또 제트엔진이 내뿜는 400~500℃의 고온은 눈을 순식간에 증발시키기 때문에 활주로가 순식간에 뽀송뽀송해져요. 24시간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해야 하는 공군으로선 너무나 고마운 장비죠.

SE-88은 6개의 열기 배출구가 있고, 크기는 20m가 넘는 대형 장비입니다. 생김새가 특이해 공군 장병들 사이에선 '마징가Z(일본 애니메이션 작가가 만든 세계 최초 탑승형 거대 로봇 캐릭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죠.

그렇다면 SE-88에 사용되는 엔진은 무엇일까요? 처음 만들어진 1980년대만 해도 박물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F-86 세이버 전투기의 엔진을 썼는데, 이제는 1960년대 만들어진 F-4, F-5 전투기의 엔진이 대부분이랍니다. 세분화하면 F-5의 J85 엔진을 장착한 것은 소형 제설차, F-4의 J79 엔진을 장착한 것은 중형 제설차예요. 각 제설차는 활주로·도로의 너비 등을 고려해 운용되고 있죠. 언젠가는 지금 공군이 사용하는 F-15, F-16 전투기의 엔진으로 만든 SE-88을 볼 수도 있겠네요.
	제설 작전 중인 공군20전투비행단의 SE-88 제설 차량. /국방일보
제설 작전 중인 공군20전투비행단의 SE-88 제설 차량. /국방일보
SE-88은 반드시 눈을 치워야 하는 공군 장병들에게 참 고마운 장비이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일단 오래된 엔진을 사용하니 고장 확률이 높다는 점, 또 워낙 큰 엔진을 단 차량이니 운전하기 힘들다는 점 등이 대표적인 단점이죠. 또 SE-88만으로 모든 눈을 다 치울 수는 없기 때문에 활주로 바깥으로 날아가 쌓인 뒤 얼어버린 부분은 사람이 깨서 치워야 합니다. 전투기 엔진이다 보니 항공유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성비도 좋은 편은 아니죠.

그런데도 왜 공군은 SE-88을 만들어 운용하는 걸까요? 바로 짧은 시간에 많은 눈을 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SE-88 한 대는 장병 수백 명이 해야 할 제설 작업을 순식간에 끝내버린답니다. 이 하나만으로 늘 원활한 공중 작전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공군 부대에 꼭 필요한 장비가 됐죠. 언젠가는 도태되는 무기 체계의 세계에서도 SE-88 생명력은 아마 꽤 오랜 시간 유지될 것 같네요.

자료: 국방일보
맹수열 기자맹수열 기자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을 거쳐 국방일보 기자로 활동 중이다. 국방 정책과 무기 체계 등을 주로 다뤘으며 현재 국방일보 취재팀 데스크로서 국방일보 지면 편성 및 기획, 기사 작성을 총괄하고 있다. 또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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