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신청·활동팁

명예기자 신청·활동팁

명예기자를 수시로 모집합니다. 아래 ‘명예기자 신청하기’를 눌러 안내에 따라 신청서를 작성하면 됩니다. 선발된 어린이에게는 월말에 개별 문자로 알려 드립니다. 한번 명예기자로 선발된 학생은 학년이 올라가도 계속 활동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조선일보 명예기자들은 전국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 ‘우리 학교’와 ‘내 고장’ 소식을 전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직접 기사를 써서 전하는 역할은 물론, 혼자서 취재하기 힘든 큰 행사나 알려지지 않은 미담 사례 등은 어린이조선 편집실 기자에게 제보하여 담당 취재 기자와 동행 취재를 하는 역할도 담당합니다.

어린이조선일보가 주관하는 특별 간담회 자리에 토론자로 초청되기도 하고, 각종 시설 탐방 및 유명 인사 인터뷰에 어린이조선일보 취재 기자와 함께 취재 활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1. 어린이조선일보 또는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초등 1~6학년, 유치부, 중 1·2학년
  2. 상시모집
  3. 02)724-7879

기사작성법

취재대상

학교와 고장의 갖가지 행사, 아름답고 흐믓한 이야기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등이 모두 좋은 기삿거리입니다. 예를 들어 회장 선거나 수련회, 공개 수업 및 특기적성 교육, 학부모회와 어린이 단체 활동 등은 명예기자로서 반드시 취재해야 할 행사입니다. 운동이나 외국어, 과학 등에 빼어난 실력을 가진 친구의 이야기도 좋은 취잿거리가 됩니다. 남 몰래 선행을 베푸는 친구나 선생님의 이야기는 전국 어린이조선일보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아주 좋은 기삿거리이지요.

이 밖에 자기 고장만의 독특한 행사나 명물, 화제 인물 인터뷰, 친구들 사이의 화젯거리 등도 좋은 기사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재료입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구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매달 개최되는 행사를 조사하여 미리 ‘취재계획’을 세운 후, 취재에 나가면 여러 행사를 빠짐없이 취재할 수 있습니다.

쓰는 요령

기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의 ‘6하 원칙’을 중심으로 써야 합니다. 학교와 관련된 기사는 교장 선생님, 관계된 선생님이나 학생의 이름을 반드시 쓰고, 기사 끝에는 기자의 학년과 이름을 꼭 밝혀야 합니다. 행사 관련 기사일 경우에는 ‘6하 원칙’에 따른 행사 소개 외에도, 그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함께 취재해 써주면, 기사에 더욱 생동감이 넘치게 됩니다.

사진

기사와 함께 관련 사진을 직접 찍어 보내면 더욱 효과적인 보도를 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글로 쓴 기사만 읽는 것보다 사진을 통해 그 날의 생생한 현장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후 이메일을 통해 기사와 함께 보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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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방법

  1. kid2@chosun.com
  2.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21길 30 조선일보사 어린이조선일보 편집실 명예기자 담당자 앞 (우편번호 04519)
  3. 전화 : (02)724-7874~5
    팩스 : (02)724-7878

명예기자 기사의 본보기 (학교 기사)

과학의 달 4월을 맞아 서울 ○○초등학교(교장 ○○○)는 ○일 과학의 달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고, 과학 꿈나무를 키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과학 독후감 쓰기, 모형항공기 날리기, 발명품 경진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어린이들은 각자 정한 부문에 참가해 마음껏 재능을 뽐냈다. ○학년 ○○○ 군(양)은 “어렵게 여겨졌던 과학과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학년 ○○○ 기자

명예기자 기사의 본보기 (지역 기사)

전북 고창군에서는 지난 ○~○일 제○회 고창수박축제가 열렸다. 훌라후프, 수박씨 멀리 뱉기, 수박을 주제로 한 사생대회 등 어린이를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많이 펼쳐졌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지친 가족들은 주말을 맞아 시원한 수박도 맛보고 여러 프로그램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 양(○○초 ○년)은 “수박이 이렇게 예쁘고 맛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전북 ○○초등 ○학년 ○○○ 기자

◇ 뿌리 깊은 신문 ‘조선일보’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 1920년 3월 5일 창간된 조선일보는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신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년 뒤, 나랏일을 걱정하는 훌륭한 어른들이 뜻을 모아 우리말 신문을 만들어 겨레의 얼을 되새기면서 일본 제국주의와 싸워 온 것입니다.

민족과 독립 정신을 일깨워 온 조선일보의 역사는 험난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창간된 지 반년도 못 된 1920년 8월 27일, 조선일보가 사토 일본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사형 선고 기사를 크게 싣자, 일제는 이를 트집 잡아 1주일 동안 신문을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민간 신문이 나타난 이후, 처음 내려진 일본의 언론 탄압이었습니다. 인쇄 신문을 수없이 빼앗기면서 네 차례나 일제로부터 정간(停刊)을 당하면서도 조선일보는 겨레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자라 왔습니다. 중·일 전쟁을 일으켜 대륙 침공의 헛된 꿈에 사로잡힌 일본이 우리 민족 독립 정신의 싹조차 없애기 위해 우리말 신문을 폐간한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을 맞은 그해 11월 23일 조선일보는 되살아났습니다. 6·25 전쟁 때에도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수원과 부산에서 조선일보를 계속 펴냈습니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조선일보는 독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으로 오늘날 국내 최고의 신문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금도 민족의 올바른 생각을 펴는 신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 소년조선일보의 발자취


소년조선일보는 1937년 1월 10일에 창간된 어린이 신문입니다. 소년조선일보의 ‘엄마’격인 조선일보는 1937년 1월 10일자 조간 1면 사설 ‘소년판을 내면서’를 통해 소년조선일보를 따로 발행하는 깊은 뜻을 밝혔습니다. 또 같은 날짜 조선일보 석간 2면에는 ‘소년조선일보’라는 제호 아래 ‘오늘 일요일부터 발간’이란 제목의 알림 기사를 실었습니다. 소년조선일보의 뿌리는 1937년 1월 10일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백성들 모두가 원통한 나날을 보내던 1936년 1월 13일 소년조선일보는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인 민족신문의 하나인 조선일보 석간 3면에 매주 월요일 ‘소년조선일보란’이라는 문패를 달고 나왔던 것입니다.

‘소년조선일보’라는 독자적인 신문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은 그 이듬해인 1937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그때 소년조선일보는 어른 신문의 절반 크기인 타블로이드판 형식으로 4개 면에 걸쳐 기사를 싣고 조선일보의 부록 형태로 발간되었습니다. 소년조선일보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 날은 소년조선일보의 역사적인 창간일이 되었고, 동시에 국내 언론 사상 최초의 특수지가 탄생하는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아동 문학가 고(故) 윤석중 선생이 편집을 맡았던 소년조선일보는, 이후 이은상·주요한 선생의 동시, 이효석·주요섭 선생의 동화 등을 전하며 나라 잃은 어린이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창간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더욱 극심해진 1940년 8월 10일, 일제는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시켰고, 조선일보의 ‘아기’격인 소년조선일보는 ‘엄마’와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조선일보는 폐간호 1면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화보로 꾸미고,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심어주며 아쉬운 이별을 고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영원한 벗, 소년조선일보가 동심 곁으로 다시 찾아와 복간호를 펴낸 건 1965년 2월 21일이었습니다. 이에 앞선 1955년 1월 23일, 조선일보 부록으로 일단 부활했으나, 10년 후 조선일보 지면과 헤어져 현재와 똑같은 형태의 일간 신문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소년조선일보의 구호는 ‘어머니도 함께 보는 새 어린이 신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과 더욱 가까워지려 노력했던 소년조선일보는 1967년 4월 18일 ‘어린이 명예기자’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게 됩니다. ‘독자가 신문 만들기에 직접 참여한다’를 참뜻으로 한 명예기자 제도에는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 중 37명의 학생이 뽑혀 제1기 소년조선일보 명예기자로 활동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따져본다면, 소년조선일보의 명예기자 제도는 현재 40여 년간 이어져 온 전통 있는 제도인 것입니다.

변화의 흐름에 항상 발맞춰온 소년조선일보는 2000년 3월 6일에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인터넷 신문(http://kid.chosun.com) 또한 새롭게 단장, 더욱 풍부한 읽을거리를 어린이 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새 소식, 다양한 읽을거리, 알찬 학습 문제, 재미있는 만화로 가득 찬 소년조선일보는 어린이 여러분에게 보다 빠른 새 소식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년조선일보는 오랜 역사를 빛낼 수 있는 더욱 알차고 생생한 소식을 앞으로도 어린이 여러분을 위해 날마다 펴낼 것을 약속드립니다.